감정이 없고 오직 이성적으로만 생활을 하는 사회 속에서 산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의 성격이 있기나 했을까? 그렇다면 나 자신 했었던 고민과 질문들이 헛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최근까지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고민과 질문을 했다. 그러다 감정이 정체성을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경험을 바탕으로 감정들이 나타나는 것들은 ‘돌’과 비슷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어느 환경에 있었는지에 따라 돌의 구성 및, 모양, 특징들이 많이 상이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감정에 따라 1차적으로 보여지는 부위 중 하나가 손이고, 가장 쉽게 읽히는 부위라고 생각한다. 행복, 자신감, 슬픔, 화남 등 감정에 따라 손의 제스처나 악력이 달라지기 때문에 돌의 성격을 달리하는데 영향을 주는 압력과 비슷하다고 생각이 든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감정 단어는 뇌에 고정된 파일처럼 저장된 감정적 사실에 관한 것이 아닌, 세계에서 들어오는 단순한 물리적 신호에 대해 개인의 감정 지식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다양한 감정적 의미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감정은 세계에 대한 반응이 아닌, 개개인이 구성하는 세계의 일부라고 말한다. (p.186)
작현신, 정수남의 <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에서도 감정이 사회를 움직이는데 꽤 중심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몇 부분을 인용해서 정리를 하자면, “인간은 늘 감정적 존재였고, 감정적으로 관계를 맺어왔다. 감정이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상황과 만났을 때, 어떤 감정은 부각되고 어떤 감정은 뒤로 숨어버릴 뿐이다. … 감정은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관리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를 또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놓기도 한다. … 감정은 생물학적이면서도 문화적이다. … 따라서 감정은 각 사회 문화에 따라 달리 표출된다. … 감정은 단지 우리의 가장 내밀한 욕망과 반죽에 수반하여 유발되거나 사회 문화적으로 구성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 정체성, 이해관계들에 스며든다."(Jasper, 1997: p.108) 따라서 감정 역시 행위의 한 동인이 되어 다시 사회와 문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p.30 - p.44)” 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감정은 우리 근처에서 항상 있으며, 사람들은 감정 없이는 못 산다. 검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껍데기만 남은 것 같다고 한. 즉 감정은 우리를 정의하는 일부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감정 관련 전문가들이 말하길, 감정은 아직 연구를 할 부분들이 많다고 한다. 감정은 왜 항상 우리와 공존해야 되는 걸까?
이제는 메타버스 시대도 점점 확장되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감정도 서서히 없어질 것이다. 미래에는 감정이라는 것 자체를 이해를 못 할 수도 있다. ‘이퀄리브리엄’이라는 영화 속 감정을 못 느끼게 통제된 사람들처럼 말이다. 적어도 인간과 교류할 때 느껴지는 감정들이 사라지고 가짜의 감정들을 보여주는데 쉬워져 감정이 무미건조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해하기 위해 시각적으로, 손으로 만져 느낄 수 있는 물건을 사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다.
작품 소개
Jun’D, <군림 6>, 2023, 우드에 아크릴, 45.5cm x 37.9cm
Jun’D, <군림 1>, 2022, 캔버스에 아크릴, 80.3cm x 100cm
Jun'D, <군림 2>, 2022, 캔버스에 아크릴, 50cm x 65.1cm
Jun'D, <군림 7>, 2023, 우드에 아크릴, 45.5cm x 37.9cm
Jun’D, <감정석 캔>, 2023, mixed media, various dime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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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없고 오직 이성적으로만 생활을 하는 사회 속에서 산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의 성격이 있기나 했을까? 그렇다면 나 자신 했었던 고민과 질문들이 헛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최근까지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고민과 질문을 했다. 그러다 감정이 정체성을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경험을 바탕으로 감정들이 나타나는 것들은 ‘돌’과 비슷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어느 환경에 있었는지에 따라 돌의 구성 및, 모양, 특징들이 많이 상이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감정에 따라 1차적으로 보여지는 부위 중 하나가 손이고, 가장 쉽게 읽히는 부위라고 생각한다. 행복, 자신감, 슬픔, 화남 등 감정에 따라 손의 제스처나 악력이 달라지기 때문에 돌의 성격을 달리하는데 영향을 주는 압력과 비슷하다고 생각이 든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감정 단어는 뇌에 고정된 파일처럼 저장된 감정적 사실에 관한 것이 아닌, 세계에서 들어오는 단순한 물리적 신호에 대해 개인의 감정 지식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다양한 감정적 의미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감정은 세계에 대한 반응이 아닌, 개개인이 구성하는 세계의 일부라고 말한다. (p.186)
작현신, 정수남의 <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에서도 감정이 사회를 움직이는데 꽤 중심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몇 부분을 인용해서 정리를 하자면, “인간은 늘 감정적 존재였고, 감정적으로 관계를 맺어왔다. 감정이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상황과 만났을 때, 어떤 감정은 부각되고 어떤 감정은 뒤로 숨어버릴 뿐이다. … 감정은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관리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를 또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놓기도 한다. … 감정은 생물학적이면서도 문화적이다. … 따라서 감정은 각 사회 문화에 따라 달리 표출된다. … 감정은 단지 우리의 가장 내밀한 욕망과 반죽에 수반하여 유발되거나 사회 문화적으로 구성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 정체성, 이해관계들에 스며든다."(Jasper, 1997: p.108) 따라서 감정 역시 행위의 한 동인이 되어 다시 사회와 문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p.30 - p.44)” 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감정은 우리 근처에서 항상 있으며, 사람들은 감정 없이는 못 산다. 검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껍데기만 남은 것 같다고 한. 즉 감정은 우리를 정의하는 일부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감정 관련 전문가들이 말하길, 감정은 아직 연구를 할 부분들이 많다고 한다. 감정은 왜 항상 우리와 공존해야 되는 걸까?
이제는 메타버스 시대도 점점 확장되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감정도 서서히 없어질 것이다. 미래에는 감정이라는 것 자체를 이해를 못 할 수도 있다. ‘이퀄리브리엄’이라는 영화 속 감정을 못 느끼게 통제된 사람들처럼 말이다. 적어도 인간과 교류할 때 느껴지는 감정들이 사라지고 가짜의 감정들을 보여주는데 쉬워져 감정이 무미건조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해하기 위해 시각적으로, 손으로 만져 느낄 수 있는 물건을 사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다.
작품 소개
Jun’D, <군림 6>, 2023, 우드에 아크릴, 45.5cm x 37.9cm
Jun’D, <군림 1>, 2022, 캔버스에 아크릴, 80.3cm x 100cm
Jun'D, <군림 2>, 2022, 캔버스에 아크릴, 50cm x 65.1cm
Jun'D, <군림 7>, 2023, 우드에 아크릴, 45.5cm x 37.9cm
Jun’D, <감정석 캔>, 2023, mixed media, various dimension